중간이 가장 위험합니다
오늘 칼럼의 제목은 지난 9월 5일(금)에 있었던 선교 보고예배에서 EC의 김유나 자매가 간증을 했던 내용의 한 대목입니다. 그 때 유나 자매의 간증을 듣고 이 문장이 며칠간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중간을 안전지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론 ‘중간만 하자’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에서 얼마나 위험한 함정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어중간하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두루뭉술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적당히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애매한 태도를 보일 때 이런 표현을 씁니다. 요한계시록에도 보면 이런 태도를 보인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은 저들의 태도를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다” 그리고 이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한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애매한 신앙의 모습을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예배하지만 예배하는 기쁨과 은혜가 없고, 말씀을 듣지만 감동과 변화가 없고,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을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에는 중간이란 없습니다. 신앙에서 중간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한 발씩 걸쳐서 양쪽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모습일 뿐입니다. 그러한 상태에 머무를수록 신앙의 모습은 있지만, 감사와 기쁨은 점점 사라지고 신앙의 형식만 남게 됩니다.
이제 그 중간지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곳이 편하고 안전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은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아직 괜찮다’, ‘그정도면 됐다’라는 거짓 메시지에 속지 마십시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한 걸음 더 나아가 뜨겁게 헌신하는 믿음의 전진뿐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한다!”